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OB 베어스 (문단 편집) === 1984년 ~ 1988년 === 1984년, 새 감독으로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이 취임했고, 코치진도 보강되었다. 선수도 재일교포 최일언, 홍신차등을 비롯해 신인 윤석환, 김진욱, 김광림 등을 확보했다. 그리고 [[계형철]]이 14승, [[박상열]] 12승, [[장호연]]이 평균자책점 1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야수진에서도 부상 공백이 메워지며 9연승으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이후 6연패에 빠지며 삼성에게 전기리그를 내주었고, 후기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선두로 질주했지만, 8월 15일 부터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 마지막 두 경기에서 OB는 해태와, 롯데는 삼성과 맞붙었는데, 삼성은 롯데에게 일부러 패하면서 OB는 후기리그도 2위에 머물렀다[* 다만 불과 이틀사이에 OB도 해태와 함께 김일권의 도루왕 타이틀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승부조작을 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삼성 감독은 [[김영덕]]. 물론 그 김영덕 감독의 져주기가 있었다지만 84년의 OB는 역대 가장 운이 없는 팀이었다. 전ㆍ후기 통합 승률 1위를 달성하고도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었다. 1985년, OB는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 [[동대문 야구장]]으로 옮겼다. 이 해에는 연고이전 직후 임시 홈으로 삼았던 동대문에서 거의 대부분의 홈경기(37경기)를 치렀지만 특별 홈경기로 MBC의 홈구장인 잠실에서 9경기, 예전 홈구장이었던 대전에서 6경기를 치렀으며,[* 8월 18~20일에 청보를 상대로 치른 3연전이 OB가 홈팀 자격으로 치른 대전구장의 마지막 경기였다.] 특이하게 당시 롯데의 제2홈구장이었던 마산에서도 중립경기로 2경기를 치렀다.[* 그 중의 1경기(9월 26일)의 상대가 공교롭게도 홈팀인 롯데였다. 물론 특별 홈경기인 관계로 롯데가 선공을 했다.] 그리고 그해, 전기리그는 2위를 기록했으나 후기리그는 5위로 마무리했다. 이듬해 1986년 아마야구와의 갈등으로 인해 1988년까지 사용하는 조건으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르기 시작했다.[* 아마야구의 반발이 계속되며 동대문야구장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고 1989년 이후에도 계속 잠실야구장에서 홈구장을 치렀다.] 그리고 그해 전기리그는 5위에 그쳤으나 후기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달린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형석(야구)|김형석]]의 동점 홈런(일명 '운명의 한 방')과 신경식의 끝내기 안타로 4-3으로 승리하며 청룡과의 끈질긴 경쟁 끝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승 3패로 패하고 1987년 전기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예상외로 해태 킬러였던 [[최일언]]이 1차전부터 난타당하는 등 1승2패로 부진하며 해태에 2승 3패로 탈락한다.[* 1차전 충격패에도 불구하고 3차전까지 2승1패로 앞서있었고 4차전 9회말2아웃까지 3:2로 앞서있어 [[1987년 한국시리즈]]가 눈앞에 있었지만 2사 3루에서 유지훤의 실책성 수비로 동점이 되었고 연장 10회에서 최일언의 끝내기폭투로 통한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전설의 타이거즈]]에 [[김준환]]과 [[김일권]]이 출연하여 1987시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김일권은 198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팀의 우승을 지켜봐야했고 김준환은 집안 사정때문에 1987년 한 해 최악의 정규시즌 성적을 기록했으나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시리즈 MVP를 탔다고 말했다.] 1988년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장호연]]은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다. 이후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한다. 시즌 후에 두산그룹은 우승을 못한 김성근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 했고, 김성근 감독도 사임하여 신용균 코치, 최주억 코치, 박상열 투수가 태평양으로 이적하게 된다. OB시절에는 종신감독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구단주와 사이가 돈독했다는 평도 있었으나, 결국은 단장 이하 프런트와 큰 갈등을 겪었고, 이 갈등은 [[이광환]] 2군감독과의 알력으로 이어져 결국 팀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직후 이광환 감독 부임으로 OB는 엄청난 침체를 겪게 되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